☆ 루이 브라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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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주중 | 등록일 | 11.02.16 | 조회수 | 456 |
1809년 1월 4일 프랑스 남부 꾸브레이(Coupvray)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몬 브라이는 말에 장착하는 안장, 재갈 등의 말장신구를 만드는 마구장이였다. 루이는 3살때 아버지의 마구 작업실에서 송곳을 가지고 놀다가 왼쪽 눈을 찔리는 사고를 당해 실명하였고 4살때는 오른쪽 눈마저 감염으로 실명하였다. 그가 살았던 꾸브레이 마을 성당 신부인 자크 파뤼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10세 때에는 파리의 '왕립맹아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 맹아학교에서 사용하던 문자는 맹아학교의 창시자인 발랑띤 오이(Valentin Hauy)가 창안한 돋을 새김 문자로 맹인들의 꿈의 문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 글자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 크기가 7cm나 되어 맹인들이 사용하기에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1821년 육군 포병 장교였던 샤를 바르비에(Charles Barbier) 대위가 소개한야간 문자는 어둠 속에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문자인데 점으로 문자를 표시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글자였다. 돋을 새김된 12개의 점을 사용하여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나누어 표시하는 방식으로 루이 브라이는 이 방식의 문자를 금새 익히게 되었다. 하지만 야간 문자도 실제 사용하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점으로 표시하는 문자를 익힌 루이는 그 후 3년간의 계속된 노력의 결과 단지 6개의 점 만으로 알파벳 26글자를 모두 표시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고 맹인들이 쉽게 읽는 것 뿐만아니라 쓸 수도 있는 점자를 완성하였다. 파리 왕립맹아학교 졸업후 같은 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지만 결핵으로 건강이 나빠졌고 여러차례 요양을 하였지만 그의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다. 1852년 1월 6일 폐결핵이 악화되어 4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고향인 꾸브레이에 묻혔다가 100년이 지난 후 그의 유해는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으로 옮겨져 묻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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